▲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개성으로 치장한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과 다른 길을 걷는 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길은 대개 혼자나 한둘이 갈 수 있지 여러 사람이 함께 가기 힘듭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큰길이라면 그건 개성이 꽃을 피운 길이 아닙니다.

개성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것보다는 여럿이 어울리는 일반성이 좋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개별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공통분모가 많은 게 주는 폭넓은 평범함을 그들은 더 좋아합니다. 개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이 말하는 게 획일적이라서 싫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됐으나, 아직 완성된 끝은 오지 않았다'라는 '이미와 아직'을 숭앙하는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삼중점(triple point)에 서 있는 게 개성적인지 일반적인지 쉽게 말하기 힘듭니다. 이곳에서 때론 혼자 걷지만, 공동체가 짐을 나눠서 지기도 합니다. 평화로운 한반도가 멀리 있는 꿈이면서도,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기에 특수와 보편이 혼재합니다.

삼중점에 있으면서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는 재생을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수기지학(修己之學)의 길로 향하게 이끕니다. 이들'을' 공부'시키는' 게 아니라, 이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공부'하는' 의미와 재미를 익히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말 공부(工夫)가 일본어로는 벤쿄우(勉强)입니다. '강하도록 힘쓴다'라는 한자어의 구성으로 볼 때, 이는 '남자가 갖춰야 할 기교'를 말한 공부와 의미 구조가 다릅니다. 또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썼던 암송법과 달리 토론식 학습법을 즐깁니다.

공부에 관한 생각이 이렇게 나라마다 다름을 재생에게 알려줘서, 공부에 대해 폭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도록 이끄는 게 제가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재생이 하나님의 나라를 맞아들이기 위해 실력 쌓는 게 필요한 걸 알고, 신명 나게 공부해서 공의롭고 인자한 사람이 돼 평화를 추구하면, 그 나라가 더 아름답게 꾸며질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면서 간사, 그리고 선생인 삼중점의 삶이라서 속도가 매우 더딥니다. 목사로만 사역했다면 거짓을 주장하는 삯꾼과만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사로서 북향민 재생으로 인해 생긴 정치·경제적 특수를 노리는 '짜가'와도 싸워야 합니다. 또 선생으로서 돈을 먼저 생각해 학생을 '두당 얼마씩'으로 셈하는 장사꾼과도 싸워야 합니다. 삼중점에서 고체, 액체, 기체를 모두 아우르며, 상황에 따라 이 셋과 모두 평화를 위한 쟁론을 벌여야 합니다.

동양학은 복의 다양함을 말하는데, 제겐 복이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껄끄러운 '다투는 복'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세 가닥의 정체성을 놓고 늘 토닥거리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서로 으르렁대며 갑론을박합니다. 어릴 적에는 몸이 작고 병약했기에 갈등 생기는 게 싫었습니다. 체질이 바뀐 것도 아닌데 지금은 이렇게 버티며 삽니다.

히브리어의 복이란 말에는 '무릎을 꿇다'란 뜻이 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복을 빌어주는 상대에게 무릎을 꿇고 축사를 받았기에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와 '하나님을 저주했다'란 말을 할 때 같은 단어를 씁니다. 구약성경을 필사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주하다'란 말을 쓸 수 없어서, 완곡어법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복을 내렸다'로 바꿔서 썼습니다. 이걸 '서기관의 대치(티쿤 쏘프림)'라고 합니다.

같은 단어지만 실행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복과 저주가 갈립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내리시면 좋은 것이지만, 거꾸로 인간이 하나님께 하사(賀詞)하면 저주입니다. 삼중점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따라서 이곳에 제대로 서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축사하지 않기 위해 깨어있는지 자신의 몸가짐을 늘 돌아봐야 합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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