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시골에서 자랐기에 어렸을 때는 뷔페가 뭔지 몰랐습니다. 흑백텔레비전으로 본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뷔페에 초대받은 사람을 연기했던 모 탤런트 덕에 뷔페라는 식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 뷔페가 차려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식당이란 설명을 드라마에서 연기자의 대사를 통해 듣고, 식당이 손해가 나지 않느냐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뷔페가 만들어진 연원을 보면 서양에서 고급 음식에 뒤처져 질이 낮은 음식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먹으라고 만든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잡동사니 음식을 모아서 만든 것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한동안 고급 음식점으로 인식됐었습니다. 오늘날은 뷔페의 종류도 많고, 예전처럼 이걸 고급 음식점의 대명사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대선이 끝났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지 저는 잘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모든 걸 해주길 바라지만 그건 욕심입니다. 임기가 있기에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걸 다 차려낼 수 있는 대통령은 없습니다. 따라서 제한된 양이지만 대선에 내 선택이 포함됐기에, 앞으로 나타날 일에 대해서도 내가 일정한 몫을 책임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역사 기록을 대부분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이 독과점해서 썼고, 저도 한동안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 결에 따라 역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메가 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은 사람들이 이런 기록만 읽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승자들만의 기록으로 아무리 멋있게 밥상을 차려놔도 거기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선 후보는 늘 특정 세력에 의해 포장된 모습으로 등장했고, 국민을 위해 뷔페를 차려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됐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더는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마음껏 먹으라고 차려준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새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기에 국민에게 밥상을 혼자서 차려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접시를 자기가 고른 것으로만 채워, 가져온 것이니 끝까지 맛있게 먹어야겠다라는 뷔페의 환상을 우리가 거절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자유는 내게 있지만, 정치는 뷔페가 아닙니다. 태생적인 제약이 있기에 뷔페가 될 수 없습니다. 또 그동안 우리에게 정치가 차려낸 음식은 실제가 아니라 그림에 있는 떡이 더 많았습니다. 새 인물이 나왔다는 선거도 재래시장에서 고른 재료로 차려진 밥상일 때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걸 다 먹을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먹지만, 뷔페는 대량생산과 소비가 기본이기에 음식의 종류ㆍ맛ㆍ첨가물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걸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맛보다 다른 걸 추구하도록 유도합니다. 양이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는 시각적 가치, 차별화된 식당 분위기와 서비스 등을 제공해 뷔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다른 만족감을 줍니다. 특별한 재료로 만든 음식과 맛보다 먹을 수 있는 걸 자기가 골랐다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만듭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선거용 정치가 흥행했던 이유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슷비슷한 뷔페를 그만 차리고, 개성적인 맛깔이 나는 분배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내 입맛에 맞는 걸 먹기 위해서 선택에 따른 내 몫을 감당해야 하고, 건강한 음식을 나누기 위해서 협력해 공유밥상을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채 값싼 음식으로 차려진, 비슷비슷한 외화내빈의 싸구려 뷔페가 우리 주변에 다시 난무하게 됩니다.

자본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추구해 온, 포장된 싸구려 뷔페에 중독된 입맛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그게 꼭 필요한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미덕을 추구해야 합니다. 누구를 지지했든 우리의 대통령이 나왔으니, 더불어 살기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같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안전망 없는 대선 후 보복은 불안한 사회의 다른 모습이기에 절대 생겨나면 안 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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