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 '조양동 유적' 탐방
한국사에서 청동기 시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빈약하다. 직사각형 움집, 청동기, 민무늬토기, 고인돌 등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선사시대는 역사시대와 달리 기록이 없기 때문에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흔적을 통해 유추하고 해석한다.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처럼 말이다.
세이프타임즈가 강원도 속초에 있는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지, 조양동 유적을 탐방하고 선조들의 삶을 재구성했다.
조양동 유적은 기원전 8세기 청동기 전기의 유적으로 강릉대 박물관이 조사했다.
1991년 시행된 첫 번째 조사에서 덮개식 고인돌 2기가 발견됐다. 내부에서 △부채꼴 청동기 △슴베없는 돌화살촉 △슴베있는 돌화살촉 등이 발견됐다.
1992년 두 번째 조사에서는 7기의 집자리를 발굴했다. 구멍무늬토기와 석기류가 발견됐다.
출토된 토기류를 보면 서북한의 팽이모양토기 문화가 합쳐진 양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부 동해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청동기 문화가 한순간에 생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어떤 마을은 청동기 문화가 발전한 반면에 다른 곳은 신석기 문화를 가진 곳도 있었다.
그렇다면 조양동 유적은 무엇을 보여 주고 있을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을까.
지형을 보면 뒤에 설악산이라는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앞은 동해가 가로막혀 있는 하나의 섬처럼 돼 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길이 매우 험했을 터다. 심지어 사나운 맹수들이 서식해 항상 대규모 인원을 모아서 산을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매번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사람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해로는 육로와 달랐다. 해안가와 밀접해 있어 해산물들을 주식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양동 유적의 청동기 시대 선조들은 육지보다 바다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하지 않았을까.
바다와 밀접한 이들에게 있어 바다는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이 아닌 언제든지 넘나들 수 있는 앞마당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선조들은 바다를 하나의 길로 인식, 배를 타고 청동기 문화권 사람들과 교류해 하나의 청동기 문화권을 가진 부족으로 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선사 고고학은 사료가 없기에 사소한 증거 하나를 이용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속초 조양동 유적으로 여행을 떠나 현장 체험을 충분히 느낀 후 당시 선조의 생활방식을 추측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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