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권 작가·킬럼리스트
▲ 한상권 논설위원

생각이 복잡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각축을 벌이는 후보들의 머릿속만큼이나 일반인의 일상이라고 그들과 다르지 않다.

각종 전자기기와 휴대폰은 우리가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조차도 다른 세계와 연결을 끊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 생각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시스템적 압력을 이제는 줄여보길 바라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조용한 곳에 앉아 그냥 넋 놓고 앉아있는 시간조차도 이제는 귀하기만 하다.

혜민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무리를 하지 않고, 무리를 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건강이 돌아오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많은 인종과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소통 가능한 것이 음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음악은 태초부터 이어져온 생존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물 간의 소통에도 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자신이 내는 음의 영역이 인간이 표현하는 음악이라는 음률과 다른 것을 제외한다면 상호 소통의 일환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전문적이거나 음악적 취향이 깊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감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기술적 가치까지 바라볼 수 있기도 하지만, 우리가 음률을 대하는 능력은 지극히 원초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나만을 위한 명상도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휴식을 부여한다. 그래서 휴식과 떼어 놀 수 없는 하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F1 레이서 슈마허는 가속 페달만큼이나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속도를 줄일 줄 모르면 서킷을 벗어나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이다.

가속을 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곳에서 속도를 줄여야만 한다. 우리 삶 속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이제는 멈춤의 시간으로 엔진을 식혀야 할 때다. 사람들이 살면서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한 휴식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과연 우리는 휴식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사용했을까. 모르긴 해도 과거보다는 현재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임은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쉴 때 충분히 쉬고 일하면서도 쉬면서 일하는 게 삶을 연장하고 인생을 즐겁게 사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내 컨디션이 좋으면 함께 있는 많은 사람에게도 편안한 기운을 나눌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코로나 19의 습격으로 지친 국민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역정책에 사활을 건 의료인들 모두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다. 변이 바이러스의 여파인가, 그런 시간이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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