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 몸담고 있는 지상의 교회는 꿈이 아니고, 부활의 질서를 받아들여 신령한 몸을 입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 이들의 진정한 꿈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는 무형의 교회로 가기 위해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좇아야 하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망상을 뺀 찬송을 해야 합니다. 망상으로 부르는 노래는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듭니다.우리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기에 몸으로 수많은 판단을 합니다. 어떤 이는 인간이 뇌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뇌는 몸을 통해 들어오는 온갖 정보를 해석하는 곳입니다. 해석의 전제가 되는 종합정보는 인간의
목사는 생활인이면서 수도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교회를 운영하는데 경영이 필요하기에 때로 경영자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활수도자이기를 더 원합니다. 그리고 사업체처럼 전문적인 경영을 해야 할 정도로 예배당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작은 교회를 더 선호합니다. 작은 교회를 온몸으로 섬기는 생활수도자가 되기를 늘 바랍니다.교회 개척예배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 아는 친구 하나가 교회 경영에 신경 써야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냥 수도자 겸 생활인으로
'베드로의 눈물'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스승인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아 '그때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구나'하고,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흘렸던 제자의 눈물을 뜻하는 말입니다.이 표현이 생각났던 것은 소설가 김영하가 쓴 책 읽는 이유를 밝힌 글을 읽으면서였습니다. 그는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내면이 필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삶이 실패한 채로 끝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
아나돗학교에서는 동양고전 강독과 인문학 콘서트를 합니다. 모라디오 방송국에서 취재 왔었을 때 이런 커리큘럼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기도 했었습니다. 아나돗학교에 오는 이들은 북향민과 청소년입니다. 이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10∼20대로만 살 수 없고, 북한과 자유로운 교류가 시작돼도 북한에 다시 돌아가 살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이 두 과목을 꼭 가르칩니다.운(運)이 좋아서 대학교 때 대학원에 가라는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대학원만 가면 모대기업에서 학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었습니다.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학을 다닐 때 우리나라의 경기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안학교에 온 북한 출신 학생들에게 물어본 것이 계기였습니다. 탈북자라는 호칭이 북한을 탈출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았고, 자(者)의 뜻풀이에 '놈'이 있어서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또 제자들을 부르는 좀 더 세련된 이름이 있었으면 해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북한에서 온 제자들이 알려준 호칭이 새터민입니다.그 뒤 지인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에서 이승만(李承晩) 정부 시절인 1950년대 그의 친일파 등용 행적을
초식동물을 먹이로 하는 육식동물은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기에 실수를 하더라도 성공한 한 번의 사냥으로 오랜 기간 초원을 바라보며 조용히 지낼 수 있습니다.그러나 초식동물은 금방 소화가 돼 버리기에 자주 음식(풀)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성공한 투기꾼들은 육식동물처럼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소화되기를 기다립니다. 저들은 악어의 눈물처럼 굳이 초식동물의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초식동물은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먹기에 때로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풀을 먹으러 자주 초원으로
아나돗공동체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이고,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바꾸는 것을 설립 목표로 하고 있는 아나돗학교의 선생인 간사입니다. 목사이면서 간사이기에 늘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학생들에게 비쳐집니다.그러나 저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은 하나이고,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하나입니다.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 빚을 진 사람이기에 제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얼마만큼 확장시킬 수 있는
예전에 봤던 해외토픽 뉴스에 남의 고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고민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말하고, 그 사람은 말한 이의 고민을 대신해 준다고 했습니다. 고민만 대신 할 뿐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어떻게 직업이 되는지 궁금했지만, 당시에 꽤 성업 중이라는 뉴스를 봤었습니다.그때 그 뉴스처럼 슬픔에도 일정한 공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슬퍼하면 슬픔은 끝이라고,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거나 풀어 낼 수 있는 표현방식이 있었으면 좋
3월입니다. 그리고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어떤 꿈을 꾸고서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한반도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까요?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분들이 꿨던 꿈에 얼마나 다가가 있을까요?꿈은 내가 꾸지만 현실은 나와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내가 꾸는 것이기에 꿈은 1차방정식의 풀이처럼 해(解)가 '예' 아니면 '아니오' 하나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현실은 다릅니다. 2차방정식에서부터 무한차수방정식까지, 고통을 지닌 한 세대
나이 오십을 넘긴 후 '유(遊)', '놀이', '즐겁게 지내기'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말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아니더라도 생(生)을 놀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쉰이 넘어가자 들기 시작했습니다. 놀이가 반드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거나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공자는 오십을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아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인간이 알아야 할 천명이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 논어(論語)에 나오는 글귀인데, 제가 아나돗학교에 오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창의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려면, 자신이 어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얼마만큼 준비했는지 보여줘 그 대학에 합격하려면 먼저 책을 제대로 읽고 글 쓰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고 합니다.이 일은 자기보다 나은 상대, 고수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책을 읽은 후에는 뭐라도 써봐야
예전에 제가 북향민 제자들에게 썼던 편지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제대로 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북한에서 익힌 관습대로 행동했던 제자들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이 편지를 그들에게 부치지는 않았습니다. 수신자들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저의 SNS에만 비공개로 올려놨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사연을 공개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결혼했던 북향민 제자가 몇 명 있었습니다. 이 일을 두고 그들 및 그들의 가족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헤어졌었습니다. 이제 갓 대학생
지금은 아니지만 대안학교 운영 초기에 북향민을 가르치다가 이들에게 제가 제시한 역할모델(Role model)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아서 고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어떻게 할 지 기도하고 있었는데, 가르쳤던 학생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남한의 특수목적고등학교(외고)에 해당하는 곳에서 교장을 지냈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그 사람을 만나러 갔습니다."북향민 청소년과 청년들이 제가 말한 남한에서 갖춰야 할 삶의 모델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선생님이 이들에게 멘토가 돼 역할모델을 좀 설명해 주십시오."정중하게 하기 힘들다는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사해동포주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한겨레라고 불릴 정도로 서로 얽혀 있다는 생각입니다. 넷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모든 방면에 있는 사람이 피부색이나 종교, 언어가 달라도 하나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 세상의 이면에 대한 고찰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사상입니다.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은 부모나 친지, 가족에 대한 복이 없어서 혼자 일어섰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동양학의 사유방식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면을 통해 서로 얽혀 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의 경우 혼자서 비빌 언덕 없이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독교상담을 하고 있기에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대개 가족들이 기독교상담을 받아야 했던 일에 연루된 사연들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상담을 받아 치유가 된 후 일반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그곳에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겠느냐고 묻곤 합니다.이는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안학교의 북향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교에 가서 학업을 수행하며 남한 학생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만, 그러지 못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꼭 북향민인지 밝혀야 하느냐고 묻기도 합
논어(論語)를 책장에 두고 가끔 꺼내 읽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 때문에 '논어도 읽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냥 좋은 책이기에 읽는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지혜는 아니더라도,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이니까 장식용으로만 둘 수 없어서 읽습니다.노자, 장자, 맹자, 순자 등은 사람 이름이 곧 책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논어도 책 이름이 '공자'나 '공자어록'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유독 공자의 언행, 그분이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를 기록했다는 책 제목은 논어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하이데거(Heidegger)가 했던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말도 됩니다. 동물 중에는 인간과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이들이 있지만, 기호화된 언어체계로 만든 이야기는 인간만의 창작품입니다.구약성경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덕분에 창세기를 설화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기에 창조 이야기의 시혜를 듬뿍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역사에서도 이야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역사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扁鵲)에게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두 형이 있었다고 합니다.형제가 모두 의술의 대가였는데, 큰형은 병에 걸리기 전인 미병(未病)단계에서 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는 환자를 없애 의사가 필요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고, 어떤 사람이 환자가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썼습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병일지라도 일단 병에 걸리고 나면 고통과 흔적이 남습니다.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현대에서 말하는 예방의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병을 고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편작
북향민과 청소년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가르치기에 과목은 국어·독서·논술 한 과목뿐입니다. 교육과정도 단순합니다. 매주 마다 하루를 정해 책읽기(Book concert) 강독과 독서 토론을 하며 국어 수능모의고사와 기출문제를 분석합니다.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책읽기를 학생들이 익히게 합니다. 이를 통해 차별 받아 죄인처럼 취급 받았던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건져 올려 기존의 사회 질서와 같이 취급하게 하고, 자신과 전혀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법을 알려 줍니다.하나님 나라를 통
인간의 뇌가 하는 착한 거짓말 중 하나가 우리가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임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사람, 사건, 기회 심지어 죽음과 영원한 심판 등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사람이 기다리지 않고 살려면 자족(自足)해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는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완벽체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기다림을 슬퍼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