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저는 자식이 뿌리가 돼야 하는 시간이 됐다고 표현합니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내 뿌리가 돼 내가 열매로 존재했습니다.그러나 뿌리였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제부터는 내가 땅속으로 들어가 뿌리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연결된 가지와 열매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에게 양분을 제공해야 합니다.뿌리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됐는데도, 이걸 거부하고 땅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새소리를 즐기고 살면, 가정이 원만해지지 않고 올바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뿌리가 돼줬기에 내가 땅 위에서 햇빛을
은행에서 일했던 후배가 한 말이 있습니다. 총재에게 뭘 보고하려고 별도로 팀을 만들어 특별 보고서를 작성하면, 늘 같은 일이 생긴다고 했습니다.처음에는 경제 상황에 따라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에 ○개 정도의 계획(안)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가변상황을 모두 고려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 집어넣는다고 했습니다.그리고 한두 달 정도의 숙려 기간과 집단토의 과정을 거치면 이게 정리된다고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총재에게 보고할 때는 2개 정도의 안건으로, 많을 경우도 3개 정도로 정리된다고 했습니다.그래서 총재에
성경과 더불어 논어(論語)를 읽습니다.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약간씩 다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 책에는 공자(孔子)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로 대변되는 고대 동양인이 말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좋습니다.20대 초반 군에서 의무복무를 하던 때는, 군인에게 진중문고로 보급된 논어를 한문으로 읽지 못하고 번역된 한글로만 읽었습니다. 50대가 돼 원문이 실린 한문으로 읽으니 다가오는 감도가 훨씬 더 진하고 강합니다. 한글 번역이 제한적으로 담고 있는 책에 담긴 지혜가 한문을 통해 훨씬 더 살갑게 다가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해되지 않아 그냥 받아들인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성경에 나온 차가운 사랑에 관한 기록은, 목사로 산 지가 꽤 됐지만 여태 수수께끼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광야로 쫓아내 시험을 치르게 한 성령님의 차가운 사랑을 접하면 숨이 턱 막힙니다(마가복음 1:12).성경에서 이 장면을 기록한 순서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이 말씀 바로 위에는 하나님이 예수님께 '내 아들'이라고 대관식을 치러주신 장면이 나옵니다. 대관식을 치러주신 다음에 성령님이 한 게,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
공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살핌이 없어진 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적성이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고려해서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해서,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간 학과였습니다. 그래도 1학년 때는 그럭저럭 버텼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공공부가 시작된 2학년부터는 수업 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교재
해체주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파괴, 풀어헤침의 행위적 관점이 강한 예술 사조, 포스트 구조주의의 문학 이론으로 1960년대에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가 제창한 비평이론'이란 설명이 나옵니다.저는 그들과 발음은 같지만, 추구하는 이유가 다른 해체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제가 사역하는 공동체의 운영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사전적 정의로 보면 미니멀리즘은 단순함을 미덕으로 삼기에,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인 본질만을 표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이렇게
[이야기 하나] 모 대학교에서 교목들을 만났습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사이비·이단에 빠져 있었기에, 그걸 의논하려고 만났습니다. 그런데 교목들이 제게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신학박사지만, 기독교 사이비·이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그래서 그들이 사역하는 학교 학생들이지만, 그들은 기도만 할 뿐이고 그 학생들에게 손 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간 학부모와 함께 총총걸음으로 그들의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그들과 헤어진 후 그들이 했던 말의 의미도 잘 모르고, 처음에는 멍청하게 우쭐댔었습니다. '아
(세이프타임즈 = 정이신 논설위원) 북한에 대한 전문가가 많지만, 저는 대안학교에서 북향민을 가르치면서 만난 사람이기에 그들과 다른 시각으로 북한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런 상태에서 북한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북한에도 X세대와 MZ세대가 있습니다. 그럴싸한 거짓말로 6·25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을 북한당국의 맹목적인 가르침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김일성과 그의 가문에 충성을 다짐한 빨치산 세대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자랐지만, 생각은 북한의
(세이프타임즈 = 정이신 논설위원) 중간고사에 '안락사에 대한 법리적 공방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안락사라는 말의 뜻을 몰라서 답을 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나중에 사전을 찾아보고 이게 한자에서 온 말인 걸 알았다고 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신이 해야 할 공부가 엄청난 것 같아서 두렵다고 했습니다. 영어도 벅찬데, 한자까지 해야 하니 막막하다고 했습니다.가르쳤던 북향민 중에 법학과에 진학한 제자가 했던 말입니다. 지금은 옛 추억으로 기억하는 이야기지만, 북한에서 일어났던 고난의 행군 때에 탈북했던 사
성경은 '인간이 죄인이다'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역설적인 의미를 종합하면 죄인인데, 하나님의 복을 가진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은 죄인인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이란 복을 성실하게, 자기 속도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른 죄인으로만 살게 됩니다.성경에서 말한 죄인으로만 살면 하나님이 주신 복이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했으면, 대안을 내놔야 합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은 궤변일 뿐입니다. '입만 살아
아나돗학교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배운 게 저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단상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라면 힘든 일이 생겨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좋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연결고리가 나에게 그 자리에 있기를 의무로 요구할 때는, 거친 오해가 나를 에워싸도 이를 견디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떠나야 할 자리라면 아무리 많은 영화가 그 자리로 인해 주어져도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신(信)은 사람(人)과 말(言)의 결합입니다. 이 글자의 구성처럼 사람이 하는 말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떠나야 할 자리에 계속 눌러앉
투박한 손의 농부가 지고 가는 빈 지게를 뒤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사진 밑에는 '빈 지게가 더 무겁다'라는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사진 내용을 작가가 한 마디로 축약한 문장을 읽는 데 짜릿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비어 있는 게 더 가벼운 것'이란 생각으로만 살았던 제게 사진 밑에 있는 조그마한 문장이 만들어 준 쇠망치는 파괴력이 컸습니다.저는 꼰대 소릴 듣는 견강(堅强)한 노추·노해가 아니라 유약(柔弱)한 노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진에 곁들어진 문장에 담긴 통찰을 다시 읽었습니다. 제가
야곱은 라헬을 레아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레아에게서 많은 자기 자식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는 '야곱이 레아를 사랑했다'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레아는 자신에게서 늘 마음이 떠나 있는, 몸은 옆에 있어도 마음은 라헬에게로 가 있는 남편을 눈물로 쳐다보며 살았습니다. 야곱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로 라헬을 선택했고, 자식마저 라헬이 낳은 아들인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좋아했습니다.이건 야곱이 벌인 그만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자 그의 선택과 다른,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
저는 인간답게 살라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또 신앙인이면서 시인으로 살라고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지정하신 시인이기에 저는 노래해야 합니다.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셔서 제 몸으로 만들어진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가사와 곡을 만들어 노래해야 합니다.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인간으로서 그분의 영광을 노래하지 못하면 제 몸은 결핍 가득한 비곗덩어리가 됩니다. 결핍은 제게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라고 늘 부추깁니다. 공동체적인 인
제게 주어졌었기에,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누렸던 자유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거창하게 치아라고 말하기는 뭐하고, 이를 뽑았습니다. 이빨을 뽑은 게 아닙니다. 이빨은 동물에게 쓰는 명칭입니다. 보철해서 한 30년 썼던 어금니를 뽑았는데, 임플란트로 시술을 마치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치과에서 어금니를 뽑고 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음식은 한쪽으로만 씹어야 하고, 이를 뽑을 때 의료용 망치까지 동원해서 뺀 덕에, 이를 뺀 지 1주일 지나도록 잇몸이 부은 채 욱신욱신 쑤셔댑니다. 이제는 노화돼 가는 몸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을 버리면 안 되지.'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기독교 변증과 비교종교학을 공부했습니다. 인간 사회에 있는 다양한 종교 가운데서 기독교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경계에서 보면 기독교 밖의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공부했습니다.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제 삶에 내장돼 있는데도, 여태껏 풀지 못한 물음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겨내는 삶을 살면서, 저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공부 방향을 바꿨습니다. 풀어낼 수 있으면 좋
인간이 가야 하는 생명의 길을 예수님은 좁은 길이라고 하셨는데(마태복음 7:13∼14), 은 큰길이라고 합니다(잠언 16:17).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서 말한 길이 모두 하나님이 기쁘게 생각하시는 길인데도 표현은 서로 다릅니다. 이는 솔로몬과 예수님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이 길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의 '대로(大路)'를 히브리어로 보면 '높인 길, 공도'라는 뜻이 있습니다. 공도(公道)는 법률로 정하는 것이기에 이 길은 위에서 본 것입니다.솔로몬은 정직한 사람이 가는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제 삶을 구성하는, 바꿀 수 없는 몇 개의 텍스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딸아이의 아빠, 기독교, 목사 등.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텍스트를 받아들여 해석하며 살아야 합니다.만약 다른 사람이 가진 걸 해석하고 살면 외로워집니다. 그가 부러워서 내가 몰래 가져온 것이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건 친구가 되지 않고 남남이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어야 산 넘고 물 건너 별의별 곳을 다 다니더라도, 끝까지 동행하는 친구로 남습니다.삶은 하나의 표본이 아니라 끝까지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기능할 때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에게 주
맛없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걸 한 번에 꿀꺽 받아먹는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이 역겨워하신다'라는 표현은 '그런 짓거리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사이비·이단 교주들은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성경에서 금지한 아주 역겨운 행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교주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자신들이 준 뇌물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선물(膳物)과 뇌물(賂物)의 차이가 그것의 사용 용도와 교환가치에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
아나돗학교에서 배웠던 북향민이 결혼한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인 4학년이 됐던 해 10월에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한국 사람이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혼식은 가족끼리만 조용하게 치른다고 했습니다.일단 고마웠습니다. 갑작스레 연락을 끊었고,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결혼식을 하기 한 달 전이라도 알려줬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찹찹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에서도 엘리트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 달리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한 소중한 선택이니 더는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