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은 지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짙고 두꺼운 커튼 너머로 숨어들어온 빛이 여인의 머리를 감싼 터번에 머물다 뒷목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강하며 은은하게 번져나간다.자연스럽게 구겨진 새하얀 침대보는 여인의 둔부를 부드럽게 받쳐주며 적당한 중력을 느끼게 한다. 겨우 속눈썹만 간신히 보일 정도의 옆얼굴 외에 밋밋한 뒷모습이 전부지만, 이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리라.여인이 누드로 등장하려면 비너스, 아테네 등 여신의 이름을 덧입지 않으면 불가능하던 당시 19세기 신고전주의 화풍에서 앵그
'행복한 눈물'은 너무나 기분이 좋은 나머지 감정에 북받쳐 흐르는 눈물이다. 오랜 무명을 벗게 된 배우가 시상식 마이크 앞에서 수상소감을 밝힐 때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된다. 바라보는 이들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은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의 대표작 중 하나다. 만화를 미술에 도입한 것을 계기로 그는 지긋지긋한 무명에서 탈출했다.그저 의욕만을 가졌을 뿐 늘상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지내던 어느 날, 시무룩한 아들의 기분을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 연회가 한창이던 중 갑자기 사과 하나가 잔칫상에 떨어졌다.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복수의 칼날을 갈며 던진 사과.'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사과에 적힌 이 짧은 문장이 불러온 결과는 엄청 났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던진 사과 한 알로부터 야기된 트로이 전쟁, 신들까지 양분되며 전쟁에 가세한 대서사시의 전주곡이었다.제우스의 조강지처 헤라, 사랑하는 딸 아테네, 그리고 며느리 아프로디테. 이들 세 여신이 "사과의 주인은 당연히 자신"이라
한 사내가 나귀에서 떨어지고 있다.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사내의 표정이 상황과 맞지 않는다. 웃고 있다. 다시 봐도 마찬가지. 슬랩스틱 코메디언도 아니건만 중심을 잃은 채 땅으로 처박히는 와중에도 털북숭이 사내의 표정은 헤벌쭉하다.이 그림의 제목은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진단(陳摶)은 '진단 선생'을, 타려(墮驢)는 '나귀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쟁이 한창이던 당시,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 선생의 일화를 그림으로 그려서 윤두서가 숙종에게 올린 어람용 그림이다. 그가 굳이 이 그림을 그린
'로맨틱하다'는 말은 부드럽고 달콤한 상상을 부른다. 서정성과 에로스적 감정의 교집합 어디 쯤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프랑스의 '로맨티시즘(낭만주의)'을 작품으로 만나면 뜨악하게 된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 격렬한 사건의 현장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의 엄격함과 이상주의적 형식미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낭만주의는 이성의 규칙과 속박에서 벗어나 감성적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며, 현실의 사건 자체에서 인간성의 의미와 삶의 문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1830년, 들라클루아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됨을 알리는 '수태고지(受胎告知)'는 기독교적 사건이다. 당시 유대 율법은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쳐 죽였다. 약혼한 여인에게 이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 겟세마네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인간적인 심경을 보여주고 있듯이, 마리아도 이 엄청난 사명을 다른 이에게 돌려버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죽게 되거나 평
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아침빛이 여인의 이마에 부딪힌 후 따사로운 온기로 노란색 상의에 머물다 마침내 물병에서 흘러나오는 하얀색 우유 줄기에 도달한다. 빛의 흐름에 따른 시선의 종착지 주변에 여인의 튼실한 몸매만큼이나 두툼한 빵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빛으로 대상에 따스한 정감을 표현하며 시대의 미감을 한 폭의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화가 베르메르(Jan Vermeer·1632~1675·네델란드).실내 풍속화를 많이 그렸던 그는 잘 짜여 진 화면구도와 정확한 묘사력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할 뿐
비행기를 타보면 퍼스트클래스, 비즈니스, 이코노미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 돈이 사람을 세 개의 계급으로 나눈 것을 말이다. 비행기 여행은 형편상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행복은 상대적이라던가. 고운 미소로 맞이하는 스튜어디스 안내에 따라 1등석, 2등석을 지나 자꾸만 뒤쪽으로 들어가는 자신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다닥다닥 붙은 이코노미석에서 '상대적 빈곤'을 실감하는 것도 순간, 자존심도 잊고 붉은 커튼 안쪽 사람에게만 서비스된다는 그 라면맛을 궁금해 하는 자신과 마주친
유부녀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리여리한 몸매의 누드, 초콜렛 빛 머리카락으로 가슴을 가린 채 수줍은 듯 시선을 떨군 아름다운 이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이 그림을 보면서 단순히 1980년대 영화 '애마 부인'의 포스터를 보듯 에로티시즘을 떠올린다면 그건 주인공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림속 여인은 11세기 잉글랜드 코벤트리 지방 영주 레오프릭의 아내, 고디바.홍차의 나라 영국을 상징하듯 화면을 압도하는 붉은 빛은 그녀의 고결한 정신을 상징하는 백옥 같은 피부와 대조되면서 화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어떻게 이런 그림이 예술이고, 왜 비싼 그림이라는 거지?" "나도 그리겠다."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미국, 1912~1956)의 작품을 보면 이렇게 말하기 쉽다.그는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의 영향을 받아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물감을 흘리고 튀기며 쏟아 부었다. 물감자국을 통해 온몸으로 자신의 궤적을 표현한 '액션 페인팅'을 선보여 화단의 주목을 받는다.그가 오늘날의 명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을 보여주는 그의 표현기법이 미술사적 의의가 크다는 것. 하지
시계가 발명되기 전까지 '시간'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론 한계가 있었다. 삶이 3차원 공간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뇌구조는 시간과 공간개념을 넘나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계 이전에 해시계와 물시계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삶을 분과 초로 쪼개 계획적으로 살게 된 것은 산업사회 상징으로 불리는 톱니바퀴 시계가 상용화되면서 부터다. 인간은 숫자와 두 개의 바늘을 통해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하며 시간을 쉽게 이
'의리'를 강조하는 시대적 의미는 의리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까닭에서 기인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동안 정의에 대한 이슈가 화두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는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59세 때인 1844년(헌종 10년) 제주도 유배 당시에 그려졌다.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을 위해 그렸다.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동상이몽이었다. 예술사상 가장 유명한 동거, 고갱과 고흐의 '옐로우 하우스'에서의 60일은 서로 다른 속셈으로 시작됐다. 고갱은 고흐의 동생 '아트 딜러' 테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1888년 10월 노란색으로 칠한 고흐의 화실로 향한다. '형의 화실로 가달라'는 테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그림을 좋은 값에 팔아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반면 고흐는 이미 화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고갱과의 '화가공동체'를 통해 인정받는 화가로 성장 하려는 꿈을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고 했던 순수한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당시 무명 화가였던 고흐가 바라본 그날 밤의 별이 그의 심장을 뛰게 한 것일까. 그가 그린 은 고갱과의 다툼으로 벌어진 그 유명한 '귀 자른 사건' 이후 생레미 요양원에 있을 때 그려졌다. 누구의 강제도 아닌 자신 스스로의 결정으로 머물게 된 정신병원, 병실 밖으로 내다보이는 밤풍경을 그리며 그가 화폭에 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강렬한 붓터치로 만들어진 화려
유년시절은 흙을 밟고, 자연과 함께 동화된 그런 시간들 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연은 늘 나에게 휴식을 주고, 쉼을 주는 영혼의 안식처다.(엄혜자, 2015년 작품>. 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깊이를 보거나, 그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여린 풀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리고 숙연해 진다. 장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갈라질지 언정 결코 무너짐이 없는 그 존재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일면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듯하다.우연히 만나 시선을 잡은 이 그림은 유독 유년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수소문 끝에 작가를 만나
를 보기 위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1000만명. 프랑스를 먹여살리는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 동안 구경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미술품을 보유한 루브르. 그러나 그 많은 미술품 중 가장 사랑을 받는 작품은 단연코 루브르 박물관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눈썹이 없는 것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그림은 1911년 도난 사건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뒤 3중 방탄유리관 안에서 '특급 경호'를 받고 있다.를 그린 화가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죽음이 항상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하르멘 스텐비크의 작품 (1964).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유한한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삶을 덧없이 보내지 말라고 경고한다. 더불어 세상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가치 있는 일이라며 세상과 타협한 '무뎌진 양심'에게 일갈을 날린다."그래, 너나 잘 먹고 잘 살아라."이런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타심'이
중학생들이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많이 패러디 하는 그림 . 유명세로만 보자면 를 능가할 만큼 이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2가 무서워 북한이 쳐내려오지 못한다고 하던가. 어린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10대들이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 데 이만한 그림이 없는가보다.아마도 다가올 기말고사에 대한 불안한 심정을 이 그림 속 절규하는 인물이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서일 게다. 좀 더 확대해 보자면 이것은 안전에 대한 욕구, 안전한 시스템에서 불안에 떨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