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친숙한 동물이다. 곰 인형을 안고 자는 아이들은 곰이 위협적이거나, 사람을 해치는 맹수라 생각하지 않고, 친구로 여긴다. 꿀을 좋아하는 덩치 큰 곰이 순수하게 느껴져 무서움을 없애기 때문이다.그러나 곰은 무섭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귀엽게 손짓하던 앞발로 슬쩍 휘두르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슬쩍 들어서 던지기만 해도 죽을 수 있다. 그런 곰의 이야기가 있다. 아니, 숲의 전령으로 여기는 곰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소년은 곰의 발자국을 보았다. 뒤틀린 모양 그대로 젖은 땅이 웅덩이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중략)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To be or not to be'는 사느냐 죽느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로 위에서처럼 '있음이냐 없음이냐'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유명한 문구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영국의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의 명대사다.햄릿은 그 태생부터 암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햄릿은 국왕인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삼촌이 어머
"사람이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내 사랑은 탈출로를 파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프란츠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사랑은 자유를 얻었다 … (중략) 사랑을 자제하도록 하려는 나의 시도들은 번번이 모두 사랑의 승리로 끝났고, 매번 사랑의 계획에 복종해야 할 뿐 다른 것은 없다고 가르치며 또다시 더 큰 굴욕만을 내게 남겼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세계 모든 이들은 환호했다. 통일 독일이라는 이름으로 행복이 넘쳐나리라 생각하며 축배도 들었다. 그러나 통일이 되었음에도 행복은 여전히 먼 곳에 있었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중략) 사랑 없이는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꿈도 꿀 수도 없어요… 차가운 피가 흐르는 물고기 같은,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려요…"이렇게 외치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현대 영문학의 제인 오스틴'이라 평가받는 애니타 브루크너 작가의 의 주인공 이디스 호프다. 사랑이 없다면 차가운 피가 흐르는 물고기가 되어 버린다는 유명한 로맨스 소설 작가인 이디스는 마흔이 다 되도록 독신으로 산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유부남과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란 인간은 통 매력이 없다. 내 생각에 나는 간이 아픈 것 같다. 하긴 나는 내 병을 통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겠다. 의학과 의사를 존경하긴 하지만 치료를 받고 있지 않으며 또 받은 적도 결코 없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극도로 미신적이다…."이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를 여는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에서는 지하에 자신을 감금시킨 마흔 살의 주인공이 끝없는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미국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솔 벨로가 1956년 발표한 작품 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40대 실직자인 토미 윌헬름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몇 블록을 오가며 하루 동안 겪게 되는 절망적인 일상을 담고 있다.자신의 관점에서만 타인을 바라보는 외과 의사로 성공한 아버지, 별거 중인 채 아이들의 양육비만 재촉
어느 날,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직접 보고 싶었다.'자유와 평등'이라는 그늘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를 짓밟으며 새로운 계급을 만드는지 '왕의 무덤인 거대한 돌덩이'에 묻고 싶었다.그런 생각으로 지쳐 있을 때 눈에 띈 책이 윌리엄 골딩의 소설 다."내 코는 그녀의 머리칼로부터 몇 센티미터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내가 맡는 냄새가 위쪽 울타리 속에서 불타는 유혹과 뒤섞인 여름 내음인지 그녀 육체의 향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든 없든, 나는 그녀의 몸이 얇고 희푸른 면 아래
"17:00 전 우주에서 지구인의 인체보다 위대한 졸작도 없고, 못난 대작도 없다. 이러한 단언은 두개골 옆에 달린 귀만 봐도 충분하다. 발은 왜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내장은 왜 그렇게 징그럽게 생겼을까. 하나같이 웃고 있는 해골은 아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지구인들은 죄인의 신세나 다를 바 없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이는 에스파냐 문학의 거장인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소설, 의 한 구절이다. 사라진 동료를 찾아 나선 외계인의 탐사 일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이 소설은 우리의
"나는 플로라와 걸어가면서 그 아이가 오빠와 마찬가지로 나와 거리를 두지 않는 듯하면서도 나를 내버려 두고, 또한 주변을 맴돌지 않는 듯하면서도 나를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아이들은 성가신 편도, 결코 무관심한 편도 아니었다… (중략) 나는 아이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거닐었고, 아이들은 나의 세계에 조금도 의존하는 법이 없었다…."헨리 제임스 소설 의 한 구절이다. 120년 전인 1898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서서히 회전하며 조여오는 나사와 같은 팽팽한 긴장'을 극대화한 유령 소설이자,
가끔 누군가를 홀리듯 바라볼 때가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또는 길을 거닐 때 눈을 사로잡는 매력에 나도 모르게 뚫어지게 쳐다본다.바라봄의 유혹은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상대가 알든 모르든 그 관찰은 계속 이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야기가 생겨난다.그랬다. 무수한 책 중에 제목만으로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무섭게 노려보는 개의 시선이, 그 밑에 적힌 이라는 제목이 사로잡은 것이다. 개가 주인공인 책, 신비로웠다. 굴곡진 인생을 파란만장하다고 표현한다면 주인공 벅의 견생(犬生) 또한 그것 못지
"(노라)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한 여자의 삶이 처녀일 때는 인형 아기로, 결혼해서는 인형 아내로 점철되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는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고 불린 헨리크 입센의
"그녀는 널 쳐다보지 않아. 방 안의 불빛이 두렵기라도 한 듯, 그녀는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해. 드디어 그녀의 두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너는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치다 이내 잠잠해지곤 다시 파도를 일으키는 초록빛 바다를 발견해. 그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넌 꿈이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여. 여태까지 보아 온,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있는 그저 아름다운 초록빛 눈일 뿐이라고 말이야. 그런데도 끊임없이 출렁이며 변화하는 이 눈은 오직 너만이 알아볼 수 있고 열망하는 그 어떤 풍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참으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침대 속에서 자신이 흉측한 갑충(곤충강 딱정벌레목에 속한 곤충들을 일컬음)으로 변해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갑옷처럼 단단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머리를 약간 들어 보니 배가 활 모양의 딱딱한 갈색 마디들로 갈라져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처럼 배 위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가여울 정도로 가느다란 다리 여러 개가 눈앞에서 무기력하게 떨고 있었다…"갑자기 한 젊은이가 벌레로 변한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늙은 부모와 철없는 여동
"그는 옷을 벗고 못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놀에 물든 구름이 그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의 가슴은 천국에 온 듯한 느낌으로 넘쳐 흘렀다… (중략) 그리고 사랑스러운 물결들이 그에게 다가와 마치 다정한 여자의 젖가슴처럼 바싹 달라붙었다. 물결들은 매혹적인 소녀들이 물에 녹은 듯한 형상이었다…"이는 18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가 노발리스의 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하인리히는 그리움을 의미하는 푸른 꽃을 찾아다니다, 로맨틱한 섹스가 선물한 황홀경에 흠뻑 빠진다. 여기에서 물이란, 아름다운 섹스를 매개하는 상징물을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바람이 되고 싶은 사내가 있었다. 그것이 자기의 의지 때문이었는지, 첫사랑이 던져준 가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사내는 바람처럼 떠돌아다녔다. 꽃 위에 슬며시 앉아 배시시 웃는 귀여운 꽃잎에 입맞춤하고 달아나기 일쑤였던 사내. 그의 이름은 크눌프다. 헤르만 헤세가 아끼고 사
"오늘, 이 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여름이 앞질러 온 것이다. 나는 수영장 옆으로 침대를 옮겨 내놓았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주 늦은 시간까지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라틴아메리카 환상 문학의 선두주자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소설 의 첫 문장이다. 현대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절친한 벗이기도 한 카사레스 작가는 이 첫 문장에 앞으로 펼쳐질 극의 전개에 대한 힌트를 숨겨 놓았다. 기적, 앞질러 온 여름이 그것이다.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이렇다. 사형 선고를 받은 남
그는 갑자기 기운을 차리고 팔걸이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낮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안녕히 가세요." A…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말한다. "감사했습니다." 프랑크는 팔을 한번 휘두른다. (작가는 아내 이름을 실명이 아닌 독특한 방식의 'A…'으로 표현했다.)사양을 나타내는 의례적 표시다. A…는 뜻을 꺾지 않는다. "웬걸요! 이틀 동안 제가 괴롭혀드렸잖아요." "천만에요. 오히려 누추한 호텔에서 밤을 지내시게 해서 죄송합니다."그는 두 발자국 걸어가다가 집을 가로지르는 복도 바로 앞에 멈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이탈로 칼비노의 에서 절대악의 상징인 주인공 메다르도는 양치기 소녀 파멜라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다."내 날카로운 감정 속에는 온전한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일치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그런데 만일 그렇게 어리석은 감정이 사람들에게 그다지도 중요하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멋지고 무시무시할 거야."그 이후, 그는 붉은색 누더기만 걸친 채 신발도 신지 않은 파멜라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환상 동화의
"울면서 그는 그것을 한다. 처음에는 고통이다. 그다음에는 고통이 사그라지면서 변해 간다. 천천히 고통에서 빠져나와 쾌락으로 빨려 들어가, 향락을 즐긴다. 형체가 없는 바다, 비길 데조차 없는 그 바다."이 글은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의 한 구절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사용한 의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 1984년 고희의 나이에 자전적인 소설 을 세상에 내놓는다. 10대에 겪은 아픈 첫사랑과 슬픈 가족사를 다룬 이 소설의 내용은 대담했고, 사회적 통념을 깬 명작이
"어쩌다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거나 탁자 밑으로 서로의 발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내 모든 혈관은 주체할 수 없는 전율로 떨리곤 한다네! 그럴 때면 불에 덴 것처럼 몸을 움츠리곤 하지 ··· (중략) 그런데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그녀의 순진무구한 영혼은 모른다네.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친근한 행동이 나를 얼마나 자극하는지를. 대화 중에 그녀가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슬며시 올려놓거나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내 곁에 바짝 다가앉는 바람에 천사 같은 그녀의 숨결이 내 입술에 와 닿기라도 하면 난 벼락에 맞은 듯 그 자리에